같은 그림책만 읽어 달라는 아이, 계속 읽어줘도 괜찮을까요?
“어제도 읽었는데 오늘도 이 책이야?”
새 그림책을 꺼내 놓아도 아이는 모서리가 닳은 책을 가져옵니다.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또 읽어줘”라고 하고, 어른이 한 문장을 건너뛰면 다시 읽으라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는 건 반갑지만, 같은 책만 읽어도 괜찮은지 궁금해집니다.
아이가 즐겁게 참여한다면 같은 그림책을 반복해서 읽어줘도 괜찮습니다. 반복 읽기는 익숙한 말과 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아이가 읽기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원할 때마다 어른이 지칠 때까지 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그림책 반복 읽기에서 살펴볼 것은 읽은 횟수만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느 장면을 기다리고, 무엇을 가리키고, 어떤 말을 보태는지 함께 살펴보세요.
아이는 왜 같은 그림책을 또 읽어 달라고 할까요?
[익숙한 이야기에서 자신이 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다음 장면을 알고 있는 아이는 책장을 넘기기 전에 웃거나, 주인공이 나타날 곳을 미리 가리킬 수 있습니다. 어른이 읽어주던 말을 먼저 하기도 합니다. 듣기만 하던 이야기에서 자신이 참여할 자리를 찾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는 부모 안내 자료에서 두 살 아이가 같은 책을 반복해서 즐길 수 있으며, 세 살 무렵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는 흉내를 내거나 어른이 생략한 말과 장면을 바로잡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아이가 “그렇게 읽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 곧바로 고집으로 해석하기보다, 자신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확인하려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네가 기억하는 말이 있었구나.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볼게.”
[좋아하는 말이나 장면을 다시 즐기고 싶을 수 있어요]
책 전체보다 특정한 소리, 우스운 그림, 등장인물이 하는 행동이 좋아서 다시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어른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듣는 즐거움이 있듯, 아이에게도 다시 만나고 싶은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림책을 가져올 때마다 바로 첫 장을 펼치기보다 “오늘은 어디부터 보고 싶어?”라고 물어보세요. 아직 말로 답하기 어렵다면 아이가 스스로 펼치는 곳을 기다려도 좋습니다.
반복해서 고른다는 사실만으로 아이에게 불안이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좋은지는 아이의 말과 행동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다시 원할 수도 있어요]
어떤 아이에게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어른 옆에 붙어 앉고,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함께 웃는 시간이 좋을 수 있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도 함께 책을 보는 시간을 아이를 달래고 편안하게 하는 데 활용하도록 안내합니다.
특히 피곤한 날에 익숙한 책을 찾는다면 곧바로 새로운 질문을 더하기보다 평소처럼 읽어보세요. 이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새로운 내용인지, 편안하게 함께하는 시간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한 관찰 관점이며, 특정 책을 찾는 이유를 확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같은 그림책 반복 읽기, 연구에서는 무엇을 확인했을까요?
Horst와 동료들이 2011년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만 3세 아이들에게 연구용 그림책을 읽어주고 새로운 단어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목표 단어를 듣는 횟수는 같게 하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조건과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는 조건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아이들이 새 단어와 대상을 연결해 기억하고, 그 기억을 유지하는 과제에서 더 좋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단어를 여러 번 듣는 것뿐 아니라 그 단어가 나오는 이야기의 맥락이 반복되는 것도 학습을 도울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다만 이 연구가 같은 책만 읽으면 지능이나 정서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닙니다. 특정 연령과 연구 조건에서 확인한 어휘 학습 결과이므로 모든 발달 영역으로 확대해서 해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과 어린이집에서는 이 결과를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는 시간에도 배움이 일어날 수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충분합니다. 읽을 때마다 단어를 외웠는지 시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 1~2세와 만 3~5세, 읽어주는 방법을 달리해 보세요
아래의 말과 활동은 발달 관련 안내를 참고해 구성한 교육적 예시입니다. 연령은 참고 기준이며, 아이의 언어 이해와 표현, 관심, 기질, 그날의 피로도에 맞춰 조절해 주세요.
[만 1~2세: 가리키기와 소리도 읽기에 참여하는 방법이에요]
말로 길게 대답하기 어려운 아이에게는 그림을 만지고, 소리를 흉내 내고, 책장을 넘기는 행동도 참여가 됩니다. 미국소아과학회는 12~14개월 아이와 책을 볼 때 아이가 바라보거나 가리키는 그림의 이름을 말해주고, 아이가 낸 소리에 짧은 말을 덧붙이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책 속 강아지를 가리키며 “멍멍”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 아이의 관심을 따라가기: “강아지 찾았네. 멍멍!”
- 짧게 말을 보태기: “강아지가 공을 물었네.”
- 익숙한 소리를 기다리기: 반복해서 나오는 소리 앞에서 잠깐 멈추고 아이의 표정이나 소리를 기다립니다.
반응이 없으면 어른이 자연스럽게 이어 읽으면 됩니다. “이거 뭐야?”를 연달아 묻거나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책을 덮거나 몸을 돌리면 “오늘은 여기까지 볼까?” 하고 마무리해 보세요.
[만 3~5세: 아이가 이야기할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세요]
익숙한 책에서는 아이가 그림을 설명하거나 자기 말로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의 유아기 책 읽기 안내 역시 좋아하는 이야기를 자기 말로 표현하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는 활동을 소개합니다.
매 장면마다 질문하기보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곳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보세요.
- 읽는 역할 나누기: “이 장면은 네가 들려줄래? 듣고 싶으면 내가 읽어줄게.”
- 새롭게 본 그림 이야기하기: “나는 오늘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발견했어. 너는?”
- 아이의 해석 듣기: “이 장면이 재미있었구나. 어떤 부분이 그랬어?”
아이가 “그냥 읽어줘”라고 하면 그대로 읽어주세요. 말을 많이 해야 잘 읽은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듣고 싶은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책 속에서 달라지는 아이의 반응을 살펴보세요
비 오는 날을 다룬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빗방울 소리에 맞춰 손바닥을 두드렸습니다. 다른 날에는 우산을 가리켰고, 또 다른 날에는 “나도 장화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어른이 읽어주는 책은 같지만, 아이가 관심을 두는 부분과 참여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모습을 가볍게 살펴보세요.
- 특정 장면이 나오기 전에 표정이나 몸짓으로 기대를 나타내나요?
- 전에는 지나쳤던 그림을 가리키나요?
- 익숙한 소리나 말을 따라 하거나 자기 말을 덧붙이나요?
- 책 속 장면을 자신의 경험이나 놀이와 연결하나요?
이 항목들은 발달을 채점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닙니다. 매번 새로운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무엇을 즐기는지 알아보고, 다음에 어떻게 함께 읽을지 생각하는 데 활용해 보세요.
새로운 그림책도 보여주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요?
좋아하는 책을 충분히 즐기면서 새 책을 만날 기회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일상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좋아하는 요소 하나를 연결해 보세요]
버스 그림책을 좋아한다면 다른 탈것 그림책을, 동물 소리를 좋아한다면 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다른 책을 곁에 놓아보세요.
“네가 좋아하는 책에도 버스가 있지? 이 책 표지에도 버스가 있네. 보고 싶으면 같이 보자.”
처음부터 새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됩니다. 표지만 보고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익숙한 책을 없애기보다 선택지를 더해 보세요]
“그 책은 너무 많이 봤으니까 이제 안 돼”라고 치우기보다 좋아하는 책 옆에 새 책 한 권을 두어보세요. 아이가 고르지 않더라도 당장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자유롭게 보는 공간에 익숙한 책을 두고, 소집단으로 읽는 시간에 새 책을 소개하는 식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여러 아이가 함께 있을 때는 모두에게 한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반복해서 듣도록 하기보다 선택해서 볼 시간을 마련해 주세요.
“또 읽어줘”가 계속될 때, 부모도 끝내도 괜찮아요
반복 읽기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계속 읽어줘야 할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어주는 어른의 목이 아프거나 쉬어야 할 때는 끝을 정해도 됩니다.
아이의 아쉬움을 인정하면서 가능한 범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 읽기 전에: “오늘은 이 책을 한 번 읽고 잘 거야.”
- 다시 읽어 달라고 할 때: “또 보고 싶구나. 오늘 함께 읽는 건 끝났어. 책은 여기 두고 내일 다시 보자.”
- 낮에 쉬어야 할 때: “지금은 목이 아파서 쉬어야 해. 옆에서 그림을 보고 있어도 좋아.”
- 아이가 울며 아쉬워할 때: “더 읽고 싶어서 속상하지. 안아줄게. 오늘 책 읽기는 여기까지야.”
내일 다시 읽겠다고 말했다면 가능한 때에 약속을 이어주세요. 아이가 아쉬워한다고 해서 이미 정한 마무리를 계속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 읽기를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반응은 줄여주세요
- “또 이 책이야? 지겹지도 않아?”
“오늘도 이 책이 보고 싶구나”처럼 선택을 확인하는 말로 바꿔보세요. - “이렇게 많이 읽었는데 이것도 몰라?”
대답을 확인하기보다 “이 그림을 같이 볼까?” 하고 필요한 만큼 다시 읽어주세요. -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배워야지.”
새 질문이나 활동을 계속 덧붙이기보다 아이가 원하는 익숙한 읽기도 허용해 주세요. - “주인공도 잘했으니까 너도 그래야지.”
책을 곧바로 훈육의 근거로 삼기보다 이야기 자체를 즐길 여유를 주세요.
아이가 오늘도 같은 그림책을 가져온다면, 새로운 책을 고르도록 설득하기 전에 잠깐 기다려보세요. 어느 페이지를 펼치는지, 어디에서 웃는지, 어른의 어떤 목소리를 기다리는지 바라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책이 보고 싶었어? 그래, 같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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