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참는 아이, 자기표현력을 키우는 부모 대화법
자기표현력을 키우는 부모 대화법을 통해 싫어도 참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과 요구를 건강하게 말하도록 돕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친구가 장난감을 가져가도 가만히 있고, 하기 싫은 놀이에도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는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는 마음이 착해서 잘 양보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상대를 배려해 기다리거나 기꺼이 양보하는 행동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불편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참는다면 배려와는 다르게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표현하지 못하면 상대방은 아이가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 역시 참다가 갑자기 울거나 화를 내고, 그 자리를 피하는 방식으로 마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자기표현은 큰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알아차리고,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말이나 행동으로 전달하는 힘입니다.
잘 양보하는 아이와 싫어도 참는 아이는 다릅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친구에게 건넸다는 행동만으로 배려했는지, 거절하지 못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양보라도 아이의 표정과 몸짓, 그 뒤의 행동은 다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양보한 아이는 비교적 편안한 표정을 보이고 다른 놀이를 시작하거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립니다. 반면 원하지 않는데도 양보한 아이는 장난감을 계속 바라보고, 입을 다문 채 굳어 있거나 부모에게 뒤늦게 속상함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지 살펴보세요.
- 친구가 물건을 가져가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합니다.
- 싫은 놀이에 참여한 뒤 집에 와서 속상했다고 말합니다.
- 상대방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지만 부모에게만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 원하지 않는 부탁에도 습관적으로 “응”이라고 대답합니다.
- 참고 있다가 갑자기 울거나 크게 화를 냅니다.
- 친구를 잃을까 봐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일이 많습니다.
- 말보다 몸을 피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불편함을 나타냅니다.
한두 번 양보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관계와 상황에서 반복되는지, 아이가 양보한 뒤 어떤 감정을 보이는지를 함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왜 싫다는 말을 못할까요?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극적인 성격 하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기질과 언어발달, 과거의 경험, 관계의 분위기가 함께 영향을 줍니다.
낯선 상황에서 반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바로 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에야 “사실은 싫었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아이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싫은 것인지, 무서운 것인지, 억울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설명할 단어가 부족하면 침묵하거나 몸을 피하는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거절하면 상대가 화낼까 걱정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친구와 계속 놀고 싶거나 부모에게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싶어 자신의 요구를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어른이 늘 대신 말해 준 아이는 직접 표현할 기회가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빨리 알아차려 대신 거절해 주면 당장은 편하지만, 아이가 자기 말로 표현하는 연습은 줄어듭니다.
거절한 뒤 부정적인 반응을 경험한 아이는 말을 아끼게 됩니다. 싫다고 했을 때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 “친구에게 양보해야 착한 아이야”라는 말을 들었다면 거절 자체를 잘못된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연령에 따라 자기표현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자기표현은 말을 잘하기 시작한 뒤 갑자기 생기는 능력이 아닙니다. 영아가 몸을 돌리고 손으로 밀어내는 행동도 초기의 의사표현입니다.
0~2세는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밀어내고, 울거나 “싫어”, “안 해”와 같은 짧은 말로 의사를 표현합니다. 이때 어른은 아이의 몸짓을 말로 바꾸어 들려줄 수 있습니다.
“더 먹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구나.”
3세 무렵에는 원하는 것을 짧은 문장으로 말할 수 있지만 감정이 커지면 밀거나 빼앗는 행동이 먼저 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쓰고 있어”, “하지 마”처럼 간단하고 분명한 문장이 필요합니다.
4세가 되면 자신의 이유를 덧붙여 말하고 다른 사람과 간단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친구의 반응이 강하거나 관계가 깨질 것 같으면 쉽게 물러설 수 있습니다.
5세 무렵에는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이 발달합니다. “나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쉬고 싶어”처럼 감정과 이유를 함께 말하는 연습이 가능합니다.
연령은 참고 기준일 뿐입니다. 말이 빠른 아이도 관계에서는 거절을 어려워할 수 있고, 말이 적은 아이도 몸짓으로 자신의 경계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기표현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기표현을 가르치면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아이가 자기 뜻만 고집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자기표현과 일방적인 고집은 다릅니다.
건강한 자기표현은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말하되 상대방의 권리도 함께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장난감을 사용하고 있어. 다 쓰면 줄게.”
이 말에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면서 상대방도 기다리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자기주장만 앞세우면 상대방의 차례를 무시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위협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조건 강하게 말하는 법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함께 존중하는 표현입니다.
자기표현력을 키우는 부모 대화 5단계
첫째, 부모가 본 행동을 말합니다.
“친구가 네 장난감을 가져갔는데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었구나.”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따지기보다 실제로 본 행동을 담담하게 말합니다.
둘째, 아이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계속 가지고 놀고 싶었어, 아니면 친구에게 주고 싶었어?”
아이가 양보했다고 미리 단정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선택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셋째, 표현해도 괜찮다고 알려 줍니다.
“더 놀고 싶다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아이는 거절해도 관계가 끊어지거나 혼나지 않는다는 안전감을 먼저 느껴야 합니다.
넷째, 상황에 맞는 짧은 문장을 제시합니다.
“내가 다 쓰고 줄게.”
“나는 지금 하고 싶지 않아.”
부모가 긴 설명을 요구하기보다 아이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한 문장을 알려 줍니다.
다섯째, 아이가 직접 말할 시간을 기다립니다.
부모가 문장을 알려 준 직후 대신 말해 버리면 아이는 다시 관찰자가 됩니다.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리고, 어려워하면 함께 말하거나 첫 단어만 도와주세요.
“싫어”라는 말부터 존중해 주세요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싫다고 말하기를 바라면서 가정에서는 아이의 거절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기표현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싫다고 하는 모든 행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과 의사는 인정하되 안전과 건강에 필요한 기준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양치하기 싫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양치하기 싫은 마음은 알겠어. 그래도 이를 건강하게 지키려면 양치는 해야 해. 네가 먼저 할까, 엄마가 도와줄까?”
친척에게 안기거나 입맞춤하기를 거부한다면 아이의 신체적인 경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안기고 싶지 않구나. 손을 흔들거나 말로 인사해도 괜찮아.”
아이는 자신의 거절이 존중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거절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상황별로 이렇게 말해 보세요
친구가 장난감을 가져갔을 때
“속상했구나. 아직 사용하고 싶다면 ‘내가 다 쓰고 줄게’라고 말해 보자.”
하기 싫은 놀이에 참여하라고 할 때
“친구와 놀고 싶지만 그 놀이는 하기 싫을 수도 있어. ‘나는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라고 말해도 돼.”
간식이나 물건을 나눠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네가 나누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 봐. 지금 주고 싶지 않다면 ‘이건 내가 먹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
아이가 집에 돌아온 뒤에야 속상함을 말할 때
“그때는 바로 말하기 어려웠구나.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떤 말을 해 보고 싶어?”
친구가 싫다고 했는데도 계속 행동할 때
“네가 멈춰 달라고 말했는데 계속했다면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돼.”
아이에게 가르쳐 줄 자기표현 문장
자기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상황별로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나는 싫어.”
-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
- “멈춰 줘.”
- “내가 먼저 사용하고 있었어.”
- “다 쓰고 나서 줄게.”
- “나는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 “그렇게 말하면 속상해.”
-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도와주세요.”
처음부터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말하도록 요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목소리라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면 그 시도를 구체적으로 인정해 주세요.
“싫었던 마음을 네 말로 알려 줬구나.”
표현한 결과보다 마음을 말해 본 행동 자체를 인정하면 아이는 다음 상황에서도 다시 시도할 수 있습니다.
말수가 적다고 자기표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기질을 가진 아이가 모두 자신의 마음을 참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짧게 거절하고, 선택한 뒤 편안하게 행동한다면 말수가 적어도 자기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평소 말을 잘하는 아이도 특정 친구나 어른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있습니다. 자기표현력을 판단할 때는 말의 양보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 선택을 요구받았을 때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가?
- 불편한 행동에 멈춰 달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 필요할 때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가?
- 표현하지 못한 뒤 오랫동안 속상해하거나 갑자기 감정이 커지는가?
아이의 기질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 아이가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대신 말해 주기 전에 한 번 기다려 주세요
부모는 아이가 어려움을 겪으면 빠르게 해결해 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아이가 먼저 표현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말을 꺼내지 못할 때는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대신 말해 줄까, 같이 말할까, 네가 직접 말해 볼까?”
아이가 함께 말하기를 선택했다면 부모가 문장의 앞부분을 시작하고 아이가 이어서 말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장난감은 내가…”
“사용하고 있어.”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부모가 전부 대신하지 않아도 아이가 자신의 말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역할놀이로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실제 갈등이 벌어진 순간에는 감정이 커져 배운 문장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안한 시간에 인형이나 역할놀이로 미리 연습해 보세요.
부모가 인형을 들고 “네 장난감 나 줘”라고 말하면 아이가 대답해 봅니다.
“지금은 내가 놀고 있어.”
이번에는 역할을 바꾸어 아이가 부탁하고 부모가 부드럽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지금은 엄마가 사용하고 있어. 끝나면 빌려줄게.”
부모가 거절하면서도 화내거나 관계를 끊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아이는 ‘싫다’는 말이 상대를 미워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기표현을 어렵게 만드는 부모의 말
- “착한 아이는 친구에게 양보해야지.”
- “그 정도는 그냥 참아.”
- “친구가 싫어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 “네가 좀 이해해 줘.”
- “왜 그때 말하지 않고 이제 와서 그래?”
-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 누가 듣니?”
- “엄마가 알아서 해결해 줄게.”
배려와 양보를 가르치는 일은 필요하지만 아이의 마음보다 착한 행동을 먼저 요구하면 자기표현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친구도 하고 싶어 하는구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알려 준 뒤에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자리를 남겨 주세요.
어른이 바로 개입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자기표현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모든 문제를 아이가 직접 해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부모나 교사가 안전을 확보하고 분명하게 개입해야 합니다.
- 때리기, 밀기, 물기처럼 신체적인 공격이 있는 경우
- 아이가 멈춰 달라고 말했는데도 행동이 반복되는 경우
- 힘이나 나이 차이 때문에 아이가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
- 따돌림이나 위협이 반복되는 경우
- 아이가 심한 두려움이나 불안을 보이는 경우
-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이나 비밀을 강요받은 경우
이때 “네가 싫다고 말했어야지”라고 아이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네가 바로 말하지 못했어도 네 잘못이 아니야. 지금 알려 줘서 고마워. 어른이 도와줄게.”
아이에게 자기표현을 가르치는 목적은 위험한 상황을 혼자 견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찰과 도움이 필요한 경우
아이가 낯선 상황에서 잠시 말을 못하거나 특정 관계에서 양보하는 모습만으로 발달 문제를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모습이 여러 상황에서 오랫동안 이어진다면 언어발달과 불안 정도, 관계 경험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가정 밖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 또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불편한 일을 겪습니다.
- 자신의 생각을 물으면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굳어 버립니다.
- 싫은 일을 참은 뒤 두통이나 복통 같은 신체 불편을 자주 호소합니다.
- 또래관계를 피하거나 특정 아이를 매우 두려워합니다.
- 언어로 요구를 표현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면 부모와 교사가 관찰 내용을 공유하고, 필요에 따라 영유아 발달지원기관이나 관련 전문가에게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말이 되도록 기다려 주세요
싫어도 참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하고 씩씩하게 행동하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자신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표현해도 관계가 안전하다는 경험입니다.
아이의 양보를 바로 칭찬하기 전에 정말 원해서 한 선택인지 물어봐 주세요.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싫어”라고 말했다면 버릇없다고 판단하기보다 무엇이 불편한지 들어 주세요.
부모가 아이의 거절을 존중하고 필요한 표현을 알려 주며 직접 말할 시간을 기다려 주면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관계 안에서 전달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은 네가 말해도 괜찮아. 엄마가 들어줄게.”
이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자기표현을 시작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